스윗남의 역사
어제는 작은 딸의 두번째 (세살)생일이었습니다.
예쁜 꽃을 사서 테이블에 놓고 언니와 다이소에 가서 장난감과 포장지를 사서 선물을 포장하고 돌아오는 길에 케익을 사왔습니다.
그래도 생일인데 미역국은 끓여야지(대체 언제까지?) 하면서 잠시 마트에 들려 국거리용소고기(한우와 호주산 가격이 차이가 없어 놀랐습니다)를 사와서 미역국 담당인 제가 미역국을 요리하고 아내가 잡채를 만들었습니다.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세모녀의 사진을 찍고 있으니 아버지, 저, 남동생 삼부자와 모든걸 혼자서 다하셨던 어머니로 구성된 제 어릴적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더 잘해드릴껄 하는 슬픔과 후회도 있었지만 삼부자에게는 어머니의 공백이 현실적으로 삶의 방식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한동안(2년여) 아버지를 모시며 집안일과 요리를 하였고 가부장적인 습관이 몸에 밴 아버지는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개었습니다.
이 때 저도 자기는 먹기 싫어도 정해진 시간에 타인의 밥상을 차린다는 것의 힘듦을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차례나 어머니의 제사상도 모든 음식을 동생과 둘이서 준비하였고 아버지도 거들었습니다.
그 후 제가 결혼을 하면서 아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요리가 재밌으신지 한살림같은데 가서 반찬요리하는 법등을 배워오시더니 매일 페이스북에 올리며 자랑을 하십니다.
'우리가 엄마를 힘들게 했다'와
'왜 그 때는 지금처럼 못했을까' 하는 감정이 삼부자사이에서 공유되었고 며느리는 시댁스트레스를 일도 안주겠다는 평소의 어머니의 철학(?)이 자연스레 아버지로부터 배어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꽤나 일반화 되고 있는데 제사를 추모로 바꾸고 차례를 과일과 술만 올리는 식으로 간편화했습니다.
남자만 가득한 집안에 두 여자가 합류하고 두 딸이 태어나면서 여성이 한명 더 많은 집이 되었고
손녀들과 며느리들과 할아버지는 대화를 나누고 두 형제가 식사준비와 설겆이를 하는 게 명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근래들어 스윗남이라는 단어가 있고 제 세대의 남자를 안좋게 보는 쪽으로도 쓰이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 태양을 보자니 너무 제 모습이어서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농구나 축구나 저도 같이 끼워줘요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저로서는 절대 20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딸의 기저귀를 매일 갈아주는 입장에서 조금 제 자신을 변호하고 싶습니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렇게 스윗한 삶이 아니라고. 커피로 따지면 에스프레소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니 제게도 공을 패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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