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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탄생된 우주개발 강국

Damon Ba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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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4-22 11:43:22

21세기의 우주산업 강국을 꼽는다면 미국, 러시아, EU, 일본 그리고 중국입니다. 현재 일본은 우주탐사에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 우주개발의 출발은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전혀 달랐습니다. 미국, 소련, 독일과 중국의 선도 과학자들이 국가의 무제한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로켓을 개발한 데 반해, 일본의 우주개발은 국가의 지원 대신에 온갖 태클만 받았던 단 한명의 천재 이토카와 히데오(系川英夫, 1912~1999)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이토카와 히데오는 1935년 동경제국대학 항공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최대의 군용기 생산업체 나카지마 항공공업에 입사했습니다. 이토카와는 그곳에서 전투기 설계를 맡아 1941년 하야부사 전투기의 출시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일본어로 송골매라는 뜻의 하야부사는 당시 회전속도와 기동성 등 주요 성능에서 미국의 주력 기종보다 뛰어난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습니다. 하지만 전투기 설계에 일본 군부의 과도한 간섭과 명령 때문에 이토카와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194111월 군부의 명령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군사기술 개발을 연구하기 위해 동경제국대학 공학부의 조교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후 맥아더와 연합군 총사령부는 일본의 항공기술에 큰 두려움을 느껴 항공기에 대한 모든 연구를 금지시켰습니다. 군 협력 연구소는 모두 폐쇄되었고, 대학교에 재직하던 항공 관련 과학자들과 기술자들도 보유하던 장비와 자료를 모두 폐기해야 했고 전공마저도 바꿔야 학교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토카와 히데오는 자신의 삶과 같았던 비행기에 관한 연구를 금지당한 후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음향분야로 전공을 바꿔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바이올린 소리에 대한 연구에 열중하며 정신적 위기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토카와가 도쿄대학교에 남기 위해서는 우수한 연구논문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마침 도쿄대학병원의 의사가 소리 전문가인 이토카와에게 음향 임피던스를 이용한 뇌파진단기의 개발을 의뢰했고, 이토카와는 바이올린 소리의 진동에 착안해서 일본 최초의 펜녹음기식 뇌파측정기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이 업적으로 이토카와는 1948년 도쿄대학교 공학부 정교수로 승진했고, 대학병원과 협동으로 각종 의료기기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는 195212월 시카고 대학교 메디컬스쿨의 초청으로 미국을 6개월간 방문했는데, 그곳 도서관에서 연구자료를 찾던 중 그곳에서 Space Medicine 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인간이 우주로 갔을 때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이토카와는 미국이 조만간 로켓을 이용해 사람을 우주로 보낼 계획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스페이스 메디신.png

 

 이토카와는 6개월 후 귀국하여 5명의 회원을 끌어들여 도쿄대학교 로켓연구 동아리를 만들고 연구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일본 정부에 로켓개발 허용을 요구했습니다. 동아리에서 연구 활동이 본격화되자 이토카와는 19542월 도쿄대학 생산기술연구소(생기연)AVSA연구팀을 만들었습니다. 1954년 부족한 예산 때문에 종이로 로켓 모형을 만들었고, 초소형 로켓을 개발해 연소시험을 했습니다. 그때 탄생한 것이 직경 1.8cm, 길이 23cm, 무게 200g의 연필로켓입니다. 연필로켓의 첫 발사는 1955311, 권총사격장에서 수직발사가 아닌 수평발사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일본은 이토카와 팀 이외에 아무도 로켓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Hideo_Itokawa-01.jpg

 

spaceexpo31.jpg

 

 이토카와가 아주 작은 예산으로 연필로켓을 만들어 연달아 발사실험에 성공하자 자민당 정부는 일본이 주도하는 우주개발 가능성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1963년 과학기술청 안에 항공우주기술연구소(NAL)가 설립되었고, 도쿄대학교는 1964년 생기연의 이토카와 팀이 주도하는 우주항공연구소(ISAS)를 출범시켰습니다. 과학기술청은 196910월 우주개발사업단(NASDA)이라는 특수법인을 발족시켜 이토카와 교수의 ISAS와 본격적으로 협동 연구에 나섰습니다. 과학로켓의 개발은 이토카와 교수의 ISAS가 맡고, 대형 로켓은 NASDA가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1970년 이토카와 팀이 개발한 람다 4S라는 일본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성공으로 일본은 세계에서 (소련, 미국, 영국에 이어) 네 번째로 자력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추가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은 1992년 8월에 발사된 우리별 1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아니라 남미에서 발사되었고, 우리기술이 아니라 영국의 기술을 전수받아 제작된 것입니다.)

 

 람다 4S는 세계 최초의 대학에 의한 인공위성 발사 성공이었고, 세계 최초의 고체연료 우주발사체에 의한 인공위성 발사 성공이었고, 세계 최초의 유도 제어장치를 탑재하지 않는 로켓에 의한 인공위성의 발사 성공이었습니다. 1970년 미국은 우주개발에 국가 GDP의 약 3%를 투자했고, 거기에 투입된 엘리트는 30만명이 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방예산이 GDP3%가 되지 않으니, 미국이 당시 얼마나 많은 돈을 우주개발에 쏟아 부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은 이토카와 한사람이 단돈 500엔으로 로켓개발을 시도한지 16년 만에 미국과 비교도 안 되는 적은 돈을 사용하고도 우주 강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토카와 교수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모든 열정을 우주개발에 쏟아 붓다가 199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2003년에 ISASNASDA NAL이 통합되어 독립행정법인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JAXA의 기원은 1953년 다섯 명으로 출발한 이토카와 교수의 연구 동아리입니다. 출범 직후 JAXA는 하야부사라는 이름의 소행성 탐사선을 우주에 발사했습니다. 하야부사는 이토카와 교수가 1941년에 설계에 참여한 일본 전투기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500kg 무게의 하야부사는 태양을 두바퀴 돌아 약 20km를 비행한 후, 미지의 소행성에 착륙해서 시료를 채취하고 20106월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한 것은 하야부사가 채취한 소행성 시료가 담긴 귀환 캡슐이고, 하야부사 본체는 대기권에서 산화하며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두 개의 돌덩이가 붙어있는 듯한 모습의 그 소행성에는 ‘25143 이토카와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소행성 이토카와 그리고 지구에 성공적으로 돌아온 귀환 캡슐입니다.

 

이토카와.jpg

 

캡슐.jpg

 

JAXA2014년 또 다른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2를 발사했습니다. 목표 소행성은 201510JAXA에 의해 162173 류구(Ryugu, 용궁)란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류구는 지름이 1인 팽이 모양 소행성으로 지구로부터 약 3떨어져 있습니다. 지구와 태양 거리의 두 배입니다. 과학자들은 류구가 원시 소행성 형태여서 태양계 초기의 비밀을 간직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야부사220186월 소행성 류구에 도착했고, 그 직후 측정 로봇 두 대와 탐사로봇 한 대를 착륙시켜 류구의 지표면을 찍고 자기장을 쟀습니다. 20192월에는 소행성에 내려앉아 표면 흙을 모으는 임무에 성공했습니다. 류구 같이 작은 소행성은 중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려앉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하야부사2201945일에는 소행성에 폭발물을 발사해 구멍을 내 지표 아래 흙을 모으는 임무에 성공했습니다. 인류 최초로 지구 이외의 천체에 폭발물을 사용해 인공 크레이터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하야부사2는 류구에서 채집한 시료를 갖고 내년 12월에 지구로 귀환할 예정입니다.

 

science.jpg

 

이번 주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류구를 표지모델로 했고, 하야부사2가 류구의 주변을 돌며 관측한 조사 결과를 정리한 3편의 논문을 실었습니다. 이들 논문에는 하야부사2가 제공한 정보에 의해 류구 표면의 색상, 지형구조, 열적 특성 등이 분석되었는데, 그 결과는 류구가 태양계 초기에 형성된 원시 행성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래의 우주산업은 군사, 의료, 수송, 관광 분야 등 지구에 있는 거의 모든 사업 영역이 우주로 적용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여태껏 그랬듯이 우주산업에도 수익성을 보고 선진기술을 벤치마킹하며 우리 것으로 만들어가서 선두국가들을 따라잡는 방법을 적용할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압축성장이 우주산업에서도 적용될지 궁금합니다.

 

16
댓글
RealReds
2019-04-22 11:06:06

 러시아나 미국의 우주개발 역사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보다 기술이 훨씬 앞서있으면서도 자세하게는 모르던 일본 우주개발 역사까지 잘 알고 갑니다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탄생된 우주개발 강국

WR
Damon Bailey
1
2019-04-22 11:09:12

제가 디테일은 거의 건너뛰었는데, 아래 링크한 신동아 특집기사를 보시면 제법 상세히 일본의 우주개발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111469/1

사슴
3
2019-04-22 11:13:38

2차대전 시기 하야부사는 최고의 전투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야부사가 상대했던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연합군 전투기가 2진급이기도 했고 
미국은 콜세어(함재기지만..)나 무스탕이 나오기 전까지는

전투기 성능에서 독일, 영국 대비 한 수 떨어지는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 초반 기준 최고의 전투기는 

상당한 격차로 독일의 Bf-109와 영국의 스핏파이어였습니다

 

WR
Damon Bailey
2019-04-22 11:29:26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몰랐던 내용이네요.

사슴
2019-04-22 11:30:47

아닙니다. 좋은 내용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른손도거들뿐
2019-04-22 13:15:56

초보밀덕으로써 꼽사리 껴보자면

그 유명한 '붉은 남작'이나 '황색 14번'이 모두 Bf-109 를 타고 다녔습죠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탄생된 우주개발 강국

사슴
2
2019-04-22 14:03:26

붉은 남작은 1차 세계대전의 인물로 그 때는 아직 Bf-109가 없었습니다
그가 타던 기체는 삽엽기인 포커 입니다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붉은 남작 : 1차 대전 독일의 에이스 리히트호펜 (붉은 돼지 모델이기도 하죠)

황색 14번 : 2차 대전 독일의 에이스 한스 요하임이 타던 Bf-109기
입니다

 

오른손도거들뿐
2019-04-22 22:26:02

아... 저도 써놓고 나서 그게 생각이 났어요

자려고 누워있는데 빨간색 포커삼엽기의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구요 

아침에 수정하려고 했었는데, 으읔... 거짓말 해서 죄송합니다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탄생된 우주개발 강국

[OKC]KK26
3
2019-04-22 11:20:26

어렸을 때는 그냥 막연한 적개심밖에 없었지만 크면서 이공계 종사자로서, 그리고 서양 대학 출신으로서 일본이 참 여러 분야에서 대단한 국가이고 그 정도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도 좋은 내용 잘 봤습니다.

WR
Damon Bailey
2019-04-22 11:30:54

한 곳을 깊숙히 파고 들어서 영혼을 바치는 그런 정신이 소수이지만 과거 일본의 엘리트에게 있었습니다. 요즘일본은 그런 면이 확실히 희석되었습니다.

blue378
2019-04-22 11:36:51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

WR
Damon Bailey
2019-04-22 11:47:13

고맙습니다^^

아우렐리우스
2
Updated at 2019-04-22 13:28:46

치올코프스키와 코롤료바가 문득 생각나네요. 소련도 참 우주시대의 개막에 영웅들의 업적이 컸던 걸 생각하니, 문득 이 말이 한 번 더 생각납니다. "There are two kinds of scientific progress: the methodical experimentation and categorization which gradually extend the boundaries of knowledge, and the revolutionary leap of genius which redefines and transcends those boundaries. Acknowledging our debt to the former, we yearn, nonetheless, for the latter."

WR
Damon Bailey
2
2019-04-22 13:36:25

맞습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은 수학, 역학 등 기초과학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나라였습니다. 서방의 학자가 소련에서 출판된 저널의 번역본을 처음 봤을 때 경악했을 정도입니다. 말씀하신 두 학자는 그럼에도 놀라운 분들입니다. 코롤료바는 러시아어로 코롤료프의 아내나 딸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여자들의 성이 '바', '야'로 끝납니다.) 코롤료프의 딸 코롤료바도 우주개발 과학자입니다.

아우렐리우스
2019-04-22 13:42:31

아, 코롤료프 였네요 :D 지적 감사합니다!

[LAL]Dynasty Again
Updated at 2019-04-23 03:34:41
로켓공학의 아버지 로버트 고다드도 잊지 말아 주세요!!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탄생된 우주개발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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