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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농구와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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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6-02-27 06:06:19

 

조선시대에는 서울 인근에 여러 목장이 있었다.

지난번에 글을 적었던 여의도도 처음엔 목장으로

쓰던 무인도에서 도시로 성장한 케이스.

원래 지명이 자마장(雌馬場)이었던 사대문 외각

성동(城東) 지역에 위치한 목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자마장에서 자마(雌馬)는 한자 그대로 암말을

의미하는데, 국가에서 암말을 기르는 목장이었다가

마을이 된 자마장리는 일제 시절 한자가 바뀌어서

친숙한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자(雌➡️紫) 암컷 자가 자줏빛 자로 변경되었고

마장(馬場)이 없어지고 자 뒤에 양(陽)이 붙었다.

그렇다면 동 이름은 어떻게 변경되었을까.

이해하시는 대로 자양동(紫陽洞)이 되며,

현재의 광진구 자양동에 해당되는 지역이 된다.

 

지난번에 매니아에 적었던 글에도 있지만

광진구는 원래 성동구 소속이었으며, 동일로

동쪽을 갈라 분구시킨 지역이었기에 과거엔

강북, 성동구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지금은 강남에 위치한

유명한 지역도 원래는 이 강북의 성동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 적어볼 이야기는 과거엔 강북이었고

지금은 강남이 된 섬의 이야기.

 

자양동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면 

송파구에 위치한 한강 인접 지역이 나온다.

잠실(蠶室)인데, 잠실은 원래 현재 위치가 아닌

강북에 위치해 있던 지역이었다.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과거 역사적으로 한강 이북, 양주(楊州)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던 잠실. 광진구 쪽에

반도의 모양새로 붙어 있었던 지형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원래 본류였던 물 외에 북쪽으로 한 갈래의

작은 물줄기(지류)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한강 북쪽으로 난 이 지류를 새로 생겨난

강이라 해서 신천이라고 불렀다.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밑의 글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첨부

 

“한강물이 넘쳐서 지류가 생겼는데, 이 샛강을

신천(新川)이라고 한다. 가물면 걸어서 건널 수 있고,

물이 불면 두 줄기 강물이 되어 저자도 아래에서

한 줄기로 합쳐진다. 중종 23년(1528)에 군대를 동원해

돌을 날라다가 쓸려나가는 강둑을 보호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 <동국여지비고> 산천조 

 

그리고 이 신천이란 물줄기가 생겨나면서

잠실 지역은 원래 위치해 있던 자양동에서

떨어져 나가 섬이 되었다.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잠실도(蠶室島)

 

섬이 두 개였는데 동북쪽의 큰 섬은 잠실도,

서남쪽의 작은 섬은 부리도라고 불렸다.

 

위의 동국여지비고 문헌 기록에도 적혀 있는것처럼

신천강은 현재 여의도의 샛강보다도 더 수류가 없는

거의 건천에 가까운 물길이었다고 전해진다.

가물면 걸어서 건너는 것이 가능했을 정도.

이건 한강 본류 물줄기가 신천쪽으로 흐르는게

아니었기 때문으로, 원래 한강 본류 물줄기는

송파강 쪽으로 흐르는 물줄기였다고 한다.

 

원래부터 있던 잠실 남쪽의 강인 송파강이

한강의 본류로, 때문에 이 지역에는 나루터가

위치해 송파나루라고 불렸다. 이 송파나루에는

원주, 춘천, 영월 등의 강원도 일대와 단양 등

충청북도 일대 한강 상류의 지역 물자가 모여

결집하는 나루터였으며, 규모도 상당히 컸다고.

때문에 시장도 형성되어 송파시장이 존재했고

조선시기에는 손 꼽히는 장터 중 하나였다.

중요한 곳이었던 만큼 송파진(津)이 설치.

 

현재의 송파구 석촌호 부근에 있던 나루터로서, 도성에서

전곶교를 건너 신천진을 지나 만나게 된다. 송파에서

잠실로 연결하였으며, 광주 · 이천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도선장은 조선 후기에 발달하였다. 본래 이 부근에서

가장 큰 도선장은 삼전도였는데, 병자호란 이후

기피 경향이 있어 정부에서 송파진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상공업의 발전과 함께 유명한 장시로

성장하여, 객주 · 거간을 비롯한 도선주들이 모여들었다.

송파진에는 9척의 진선이 있어 통행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송파진별장은 인근의 광진 · 삼전도 · 신천진의 나루까지

관장하였다. 현재 석촌호수 언덕에 송파나루 유래에 관한

내용을 새긴 비석이 서 있어 과거 나루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파진[松坡津] 

 

구한말까지 존속되어

고양주면(古楊州面)에 편제되어 있었던 잠실,

그런데 변화가 일제시대에 일어나게 된다.

1914년 일제는 현 광진구 일대와 성동구 동쪽을

묶어서 뚝도면(纛島面)으로 새로 편성했는데,

뚝 하면 눈치채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 뚝은

뚝섬을 의미하는 것이 맞다.

 

행정 구역만 변경되었다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1925년, 한강 일대에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잠실은 큰 대격변을 맞게 되는데

을축년 대홍수라 불리는 이 거대한 홍수는

한강에 인접한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그리고 이 대홍수는 한강의 본류를 바꿔버렸다.

샛강이었던 얕은 물줄기 신천강이 한강의 본류가

되어버리고, 본래 물줄기였던 송파강이 망해버린 것.

그러면서 '누에를 기르는 집(잠실. 蠶室)' 의 뽕나무밭 

역시 다 쓸려 내려가 토양 자체가 모래밭이 되어버렸고

이 자연재해의 영향으로 송파나루와 송파시장은 배가

드나들고 사람이 모여들던 번성한 마을이 몰락해버렸다.

 

“(잠실에서) 물이 빠진 뒤에는 퇴적한 모래와 진흙 때문에

도로와 마을의 흔적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모래벌판으로

변했으며, 겨우 포플라 나무와 나무 자재가 쌓인 것으로 보아

이 곳이 마을의 터전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 <근세에 있어서 조선의 풍수해>, 조선총독부, 1925 -

 

그리고 이 모래밭이 드러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발견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물 속에 잠겨있던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역사 교과서에서

대표적으로 배우는 선사유적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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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지도(1950년대 한강 동부)

 

이 일대 거주민들은 가락리로 많이 이주해 갔고

원래 시장을 운영했던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대로

시장을 형성, 그것이 가락시장의 시초가 되었다.

물류의 중심은 광나루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후

1936년 광진교가 완공, 통행량이 그 쪽으로 몰렸다.

이 과정에서 천호동이 크게 성장하게 되었는데

반대로 물동량과 인구를 모두 빨린 송파진은 몰락해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한 채 촌동네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몰락은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모래밭이었던 이곳은  뱃사공 아니면 채소농사로

연명하는 수준 이하의 생활에 심지어 전깃불도

없어서 등잔불을 켜고 살았고 TV, 전화는 물론

동사무소와 파출소도 없는 서울의 낙도였다. 

홍수가 났는데 전화도 없어서 수장될 뻔하다가

미군의 헬리콥터로 구조된 사연도 있었을 정도.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그런데 진짜 고사성어 그대로의 일이 벌어진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단

말처럼, 진짜 뽕나무 밭이었던 모래벌판에 인위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강으로 둘러싸인 곳이 잠실도.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이 지도에 지명을 그려넣은 분이

매니아 회원분인 중고세탁기 님이라고👏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1970년대 정부는 강남 개발을 시작하며

인적 드문 모래톱 잠실 역시 재개발을 시작했다.

 

70년대 잠실지구 공사를 개시하며 이 인근에 있던

두 개의 마을, 북쪽은 신천리, 남쪽은 잠실리 중에서

신천을 본류로 만들어 한강의 폭을 넓히는 공사를

진행했고 자연스럽게 신천리(새내마을)는 수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수몰된 신천리의 원주민들은 지금의 잠실새내역

(구 신천역) 쪽으로 이주시켰고, 잠실새내역 인근

새마을 시장의 유래는 이 신천리 주민들이 이주해

만든 마을이어서 '새마을' 이고, 구 신천리 마을의

이주민이 많이 넘어와 거주했기 때문에 역 이름도

신천역이라 붙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옛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강은 좌우를 막아

매립하고 이를 강남에 붙여서 육지로 연결했는데

공사 끝에 1971년 4월 15일, 잠실은 송파구 북쪽에

육지로 연결되었고 강북에 있다가, 섬이 되었다가

현재는 강남에 붙은 육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매립했던 송파강의 물길 중에

일부를 남겨서 호수를 조성했는데 그 호수가

롯데월드가 위치해 있는 석촌호수가 된다.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1970년대 말 석촌호수 일대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1980년대 초의 롯데월드 착공 전의 석촌호수 일대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현재의 석촌호수

 

위에서도 길게 적었지만 원래 잠실은 송파구와는 

오랜 세월 분리되어 있던 지역이었고, 원래 한강

이남에 위치해 있던 송파구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에

속해 있어 행정구역이 전혀 다른 지역이었으나...........

 

역사 탐구: 본래 강북이었던 섬이 중심이 되기까지

강남 개발 이전 성동구에

성동, 광진, 강남, 송파, 강동구와 함께했던 성동구.

 

1975년 강남구가 성동에서 분리되었고

1979년엔 강동구가 강남구에서 분리되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1988)이 실시된 해에

1988년 1월 1일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강동구에서

현재의 송파구로 분리 신설되면서 1992년 송파구청은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고, 원래는 송파가 아니었던 역사가

더 긴 잠실이 송파구청을 가져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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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상남자의농구
2026-02-27 06:15:39

이런류 글들중에 제일 흥미롭던게 시흥시와 시흥동 이더군요. 이게뭔가 싶던

WR
농구와 야구
2026-02-27 06:33:24

시흥은 분량이 진짜 많아서 글을 써도 연작으로 쓸 양이 나올 겁니다😇

돼지빵
2026-02-27 07:58:41

그래서 저쪽 지반이 약하네 낮네 이런말들이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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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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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불타는개고기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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