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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유방)와 제갈량의 비슷하지만 다른 북벌

웨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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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5-02-13 08:27:06
한고조(유방)와 제갈량의 비슷하지만 다른 북벌

(개드립에서 퍼왔습니다)

한고조(유방)와 제갈량의 비슷하지만 다른 북벌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갈량과 유방의 북벌에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기원전 한고조가 삼진을

제패한 예를 들며 제갈량의 군재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분들이 많은데 반은 틀리고 반은 맞는말 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린정보가 있다거나 다른의견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설명드리기에 앞서 한중의 정치적 중요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요  항우는 함양을 힘으로 뺏은뒤 팽성을 수도로 삼고 18제후왕을 임명합니다 이때 유방이 받은 지역이 파촉 한중(남정) 이며 이는 방계중에서도 쩌리인 유비가 훗날 한중을 점거 한중왕에 올라 한漢 을 잇겠다는 명분이 됩니다.

 

유방은 당시 오지인 한중과 파촉 지역의 왕에 임명된 것 에 분노하고 기원전 206년 북벌을 감행합니다 자오도 기산도로 조공을 보내고 주공은 진창도로 보내 이후 점령 유방을 견제 하려고 임명한 장한은 격파하고 사마흔과 동예의 항복을 받으며 관중지역을 짧은 시간에 점령합니다 제갈량과 차이가 있다면 제갈량은 주공 조공이 확실한 반면 유방군은 기산도 진창도 자오도 전방위적으로 공격했다는 점 그리고 유방은 수로보급이 수월했던 반면 제갈량은 기원180년 경 무도 대지진으로 인해 수로가 끊겨 보급이 어려웠다는 점 입니다(보급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는 제갈량이 목유 유마를 발명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런 차이점들은 뒤로하고  비교적 역사에 관심이 적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제갈량이 못한 수 차례의 북벌은 한고조는 한번에 성공했으니 제갈량은 내치는 탁월하나 용병은 형편 없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은 합리적이며 글 시작에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유방의 세력은 10만에서 3만+ 로 약해졌지만 항우보다 먼저 함양을 점거했던 즉 항우 다음가는 군사력이었고 유방을 막아야 하는 장한은 신안대학살로 그 군세가 많이 꺾여있었으며 이 북벌책임자 에는 한신이 있었습니다 또 남정(한중) 틀어박힌 유방은 반년도 안되어서 진출한 반면 촉은 유비 사후 5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이점은  유방이 삼진을 제패한 ‘선례’가 있는 만큼 위군도 최소한 관중쪽만은 방비 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제갈량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농서 진출시 위군의

방비가 허술했다 하는 즉 기산 진출을 예상 못한 시그널이 많은데 이는 유방의 사례가 있으니 위군장수들도 주공은 진창이고 조공은 자오도 ,기산도 일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조공(조운)을 기곡방면으로  주공이 올거라고 예상되는 진창방면과는 다르게 주공을 기산으로 돌리며 관중에서 옹주로 올수있는 거의 유일한 길(대로는 유일)가정에는 마속을 파견 , 위군 주력을 묶어두고 옹주를 도모하는 그림을 생각하고 이는 가정에서 마속이 패하기전 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장합에게 패하며 북벌은 사실상 끝이 났으며 호응한 천수 안정도 모두잃고 복귀합니다. 여담으로 이때 북벌 실패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훗날 강유 북벌때엔 장안을 직접적으로 노리는 전략은 시도조차 못하고 농서방면 진출밖에 못하게 됩니다.

 

 

먼저 제갈량을 변호 하는 입장에서 글을 쓰자면 당시 촉에 비해강군이었던 위군해 반해 유방은 본인이 강군인 입장이며 그것도 제후국 상대라는점 수로보급이 원활했던 유방에 반해 제갈량은 수로가 끊긴 상태라는 점 유방의 전례가 있던 공격이었기에 위나라의 방비가 갖춰졌던 점 등이 있기에 한번의 패배가 치명적인 당시 소국의 입장에서 기산으로 우회 침공은 제일 안전하고 확실했던 루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입장으론  마속을 빼고 생각 하더라도 단순 병의 숫자로 우세에 있던 제갈량이 방비가 허술한 옹주를 점거 못했던 건 분명 본인 책임이 크다고 생각이 듭니다 또 자오도 계책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만 위연이 한고조의 고사를 예로들며 말한 것 처럼 꼭 자오곡 방면 진출이 아니더라도 다른 루트로의 조공 운영을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용병에 있어서는 사마의 장합 곽회 비요 왕쌍등을 격파한 공이 있기에 쉽게 평가 할 수 없는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나무위키에 등재된  진수의 평을 남기고 마치겠습니다.

 

 

제갈량은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터득한 걸출한 인재로서 관중,소하와 비교할만 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군사를 움직였으나 공을 이루지 못했으니, 응변(應變) 장략(將略)은 그의 장점이 아니었던 것 같다.

 

p.s 글을 다시보니 오류가있습니다 제갈량의 조공(조운)은 진창도가아닌 기곡도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주공은 진창도로 올거라고 조진은 생각했을테고 제갈량은 이걸 이용 기산으로 우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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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fine-apple
2
2025-02-13 06:25:25

한신 군사적 능력은 중국 역사 통틀어서 낮게 잡아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양반이라.. 대신 정치와 처세가 0점...

제갈량은 소하, 장량 역할 했다 보고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할듯 싶습니다.

AandPM
3
2025-02-13 06:33:27

둘의 상황 자체가 너무 달라서....

 

유방이 관중 재패한건 사실상 정치적으로 이미 깃발만 꽂으면 되는 상황이었구요. 이미 기존에 관중에 먼저 들어선 것도 유방이고, 이미 3개조를 통해 관중의 민심을 잡고 있었고 억울하게 항우에게 빼앗긴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죠.

 

어차피 관중은 신안대학살을 일으킨 항우를 지배자로 받아들일수 없었기 때문에 항우가 관중을 수도로 못한건 당연한데, 그렇다고 다른 유력한 제후를 가장 중요한 땅의 주인으로 세울수도 없는, 망할 수밖에 없는 테크였다고 보입니다.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짠게 진의 항장 출신들을 왕으로 세운거지만, 이들이 기존 관중의 귀족들을 통제할수 있었을리 만무하죠.

 

삼국지 시대의 관중은 삼보의 난으로 초토화된걸 오히려 조조가 안정화시켜준 상황이기 때문에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거기에 제갈량 북벌 시점은 이미 조씨 정권이 3대째로 완전히 안정화된 상태에서 군사적 대결로 이걸 뚫어야 하는 조건이었죠. 

 

군사적 재능을 비교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WR
웨간지
Updated at 2025-02-13 06:40:01

네 저도 단순비교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요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정했고 장안을 점거 했을지 못했을지는 뒤로 제쳐두고 천수 남안 안정을 수중에 못넣은게 저평가 받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WR
웨간지
2025-02-13 06:39:05

그리고 또 보니까 항우가 관중에서 민심은 잃은 정치적인 요소는 제가 고려안하고 썼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빙구소타
1
2025-02-13 06:34:34

진나라 소속이였던 장한이 유능한 명장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이끌고 함께 항복한 군사 20만명이 (장한을 따르며 수족처럼 부리던 부하들 포함) 항우에 의하여 생매장...당해버렸고, 옛 진나라의 영토에 진나라 소속이였던 장한/사마흔/동예가 다스리게 되면 진나라 사람들의 불만이 적을거라고 추측하여 배치를 되였으나, 진나라 사람들은 학살자인 항우에게 붙은 앞잡이 배신자라고 생각하여 장한 등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네요. 

봉지로 받은 옛 진나라의 땅은 항우에 의해 황폐화 되었다는 점과 또 각 봉지가 독립적으로 운영, 각개격파 당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강한 유방의 세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긴 했을듯 합니다.

위나라의 경우 중앙정부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대오전선/대촉전선 및 이민족전선에 보내게 되며 위급 시 정예병을 원군으로 보내는 등 거국적인 지원이 있었으니 제갈량입장에서도 쉽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혹시 한신이 제갈량의 입장에서 북벌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WR
웨간지
2025-02-13 06:38:05

이경우는 저도 궁금하네요 어떤식으로 전개됬을지 !! 참 역사란 이래서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농구도사들
1
2025-02-13 06:39:24

제갈량의 흠을 굳이 잡자면 마속이 자기 생각이 꽉 차서 남의 말을 새겨듣지 않는 사람인 걸 못 알아본 것. 그리고 약소국이 강국으로 쳐들어가는데 모든것을 걸지 않으면 당연히 불리한 것인데도 사생결단을 내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려는 그의 성격이 한몫 단단히 했다고 봅니다)입니다.

 

외교 정치력으로는 역대 최고의 인물로 봅니다만 총사령관으로 적합한 인물은 아니라고 봅니다.

WR
웨간지
2025-02-13 06:44:18

저도 굳이 사령관으로써 제갈량을 평가하면 삼국지때 지휘관중 군주포함해 10명 안에 들기도 힘들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농구도사들
1
2025-02-13 06:50:22

애초에 제갈량이 사령관을 맡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비극인거죠

WR
웨간지
2025-02-13 07:07:53

그래도 비극까지..일까요 ㅠㅠ

농구도사들
1
2025-02-13 07:09:35

군단을 지휘할 장수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제갈량이 총사령관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공격작업까지 해내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WR
웨간지
2025-02-13 07:12:17

그래도 무도와 음평을 생까고 기산방면으로 기습한건 그가 공세의 이치를 아예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롸져훼데르20
1
2025-02-13 07:47:18

제갈량이 무능하다기보단 삼국지 게임하는데 문관형 장수 등용이 안되어 관우가 군사를 맡은 상황이랑 유사한 거라 봅니다ㅎㅎ

WR
웨간지
2025-02-13 08:01:51

아아 감사합니다 ㅎㅎ

농구도사들
1
2025-02-13 07:54:59

아예 모르면 차라리 과감하기라도 했을겁니다

 

저는 제갈량이 모든것을 걸고 사생결단을 내는 것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WR
웨간지
Updated at 2025-02-13 08:38:21

음 솔직희 동의하진 않지만  1차북벌이 제일 가능성 높았던 걸 고려하면 사생결단을 했어야 했네요 ..후일만 도모한다고 북벌을 할 수 있는게아닐테니 맞는말 같아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궁금한점은 사생결단을 했다면 옹주를 점거중인 제갈량의 주력들을 규합해 장합이랑 회전을 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bmmkim79
1
Updated at 2025-02-13 07:08:26

제갈량 입장에선 할 거 다하긴 했는데,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던지라...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나 행정가 입장에선 더더욱이 그런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졌을거라 매사 조심조심했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고요. 

 

자오곡 진격만 하더라도 위연이 병사 5천을 달라고 했지만, 사실 그게 전투병 5천에, 운송병이나 기타 인력까지 합하면 거의 만명 정도 된다고 봤을때 이미 이릉에서 군력 상당수를 태워먹고 겨우 회복한 촉 입장에서 적진 한가운데 1만 병력을 투입하기엔 너무 위험이 컸습니다. 그리고 자오곡 계책이 먹히려면 위연이 장안을 먹고, 동쪽에서 오는 위나라 지원군을 막는동안, 제갈량이 조진과 곽회를 모두 두드려패고 장안에 합류하는게 3~4주 안에 이뤄져야 하는데 아무리 위나라가 어수선했다지만 어렵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그나마 제갈량도 자오도 방면에 대한 뭔가는 필요한 걸 인식해서 시도했던게 상용의 맹달을 이용하는 거였는데 북벌 직전에 위나라가 신속하게 처리해버렸죠. 아마 맹달이 제갈량이 치고 나온 후 보름정도까지만 버텨줬어도 판도가 꽤 달라졌을겁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조예라도 장합한테 병사 5만을 내어주고 '다른 곳들은 모두 미끼니까 신경쓰지 말고 무조건 서쪽으로 내달려서 제갈량의 주력을 노려라'는 명을 내리긴 힘들었을테니까요.  

 

거기다가 촉은 첫 북벌당시 무도, 음평과 서쪽의 일부현들은 사실상 등 뒤에다 제껴두고 기산으로 진격했는데 이것도 어쩔 수 없었던게, 무도나 음평을 건드리는 순간 '촉이 대대적으로 치고 나오니 방비해라'하고 위나라에 대놓고 시그널을 주는 문제가 있었죠. 결국 서쪽의 3군이 촉에게 호응했다지만 서쪽의 일부지역은 아직도 위나라 영향권에 있었고 제갈량 입장에선 여기를 그냥 두고 계속 동진하기는 어려웠기에 자원을 쪼개서 다른 책임자에게 가정을 맡겨야 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그 책임자로 마속을 선택한게 패착이 되고 말았지만요(뭐.. 이건 제갈량이 사람보는 눈이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촉에 일군을 단독으로 맡길만한 숙장이 위연밖에 없었다는 한계도 있긴하지만요)

 

다만 과거의 한신이나 가깝게는 동시대의 인재인 주유였다면 꽤나 과감한 수들을 그 와중에도 던져서 성공시켰을 것 같긴 합니다. 군재에 특화된 인물들이기도 하고 계속 내정을 맡아왔던 제갈량보다야'만약에 조금의 실패라도 있을경우 내정이 흔들린다' -> 이거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고가 좀 달랐을거라 봐서요. (전 그래서 아무리 군재가 좋았더라도 육손이 제갈량의 1차 북벌을 대신한다? 했으면 제갈량보단 좀 성과가 나았겠지만, 한신이나 주유가 하는 것 보단 한계가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육손은 뒤를 좀 챙길 줄 아는 스타일이었으니까요) 

WR
웨간지
1
2025-02-13 07:07:09

근본적인 한계도 명확지만 가능성도 높았던 건 사실입니다 자오도 보다는 낙곡으로 진출 한다면 주력을 흔들수 있다고 보고 이는 가정으로 가는 장합의 병력을 분산시킬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가정에서 패하더라도 어느정도 수습할수 있고 천수 안정 남안을 점거했을거라고 상상합니다!

bmmkim79
1
Updated at 2025-02-13 07:16:28

네, 아마 한신같은 장수였다면 설령 자오곡이 어렵다고 판단했더라도 또 다른코스에다 의병에 의병을 더해서(상황에 따라서는 조운이 조진 붙들어 놓는것보다도 더 적은 병력을 썼을거라 봅니다. 만약 제갈량이라면 그 병력조차 투입하는게 하이리스크라고 봤을겁니다) 장합의 진격속도를 늦추거나, 출신 성분이고 뭐고 간에 실전능력이 가장 좋았던 장수에게 일시적으로 전권을 주는식으로 가정을 맡기고 했을 것 같습니다. 한신이라면 그 정도의 과감함은 있는 장수였으니까요.  

WR
웨간지
2025-02-13 07:17:45

그래도 장안은 힘들겠지만 옹주방면은 점거했을것 같네요 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DDgk
Updated at 2025-02-13 09:04:30

제갈량의 북벌은 한고조가 아니라 한신이 왔어도 실패했을겁니다. 그런데 한신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안전지향의 북벌을 안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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