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 탐구 2편 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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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강유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모바일로 적다보니 띄어쓰기 오류 , 오타가 많지만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유는 쇼윈도우의 화신 원소가 죽은 202년 천수군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백약입니다 위에 임관 했으며 옹주 지역에서는 이름이 제법 알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략과 강유전의 기록이 조금은 다른데 결국엔 위로부터 버림받아 촉으로 귀순했던 것으로 보이고 다시 돌아오라는 가족(어머니)을 쿨하게 쌩까버립니다
후한말 효렴으로 천거된 이들이 많은데 이 중요한 덕목인 효(孝) 를 버렸다는 건 자신을 버린 위나라에 대한 원망인지 한의 충신으로 남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238~9년 부터 한중에 장완과 주둔했으며 243년엔 예전 위연 자리였던 실질적 북벌 책임자인 양주자사에 임명 됩니다 이후 비의 시대에 제한적 병력으로 강족과의 연계로 농서지역을 침범합니다 이때의 공적도 적도의 공 못지 않은데 만여명이나 되는 부락들을 귀속 시켰으며 기록상 하후패 곽회와의 전투도 승리했던 걸로 보입니다(확실한 건 아닙니다) 253년 비의가 곽순에게 암살 당하고 진지 , 강유 이두정치가 시작되며 이때부터 군 전권은 강유가 담당합니다.
대병을 이끌고 주구장창 농서로의 진출이 이때부터 시작되며 255년 적도로 진출하어 왕경의 군사를 말 그대로 대파 하며 대장군으로 승진합니다 바로 1년뒤 호제와 상규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기산으로 출병 단곡에서 등애와의 전투에서 대패 하고 후장군으로 강등 됩니다 호제가 합류 못한 것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은데 호제가 딱히 처벌받지 않은점 , 군을 잘 물린 공적이 없는점 을 볼때 제 생각으론 단순 타이밍을 못 맞춘 것 같습니다(아니라는 의견 적극 환영합니다) 그뒤로도 수만을 이끌고 농서로 출병하여 민심과 중앙의 신뢰를 잃게 되고 이점은 그가 한중 방어 시스템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후 사마소가 촉을 치고 검각에서 끝 까지 저항하던 강유는 항복 후 종회와 난을 준비하다 들켜 죽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드라마틱한데 5~6명을 베며 무쌍을 찍다가 죽습니다(정사기록 연의아닙니다) 여기까지 강유의 삶을 아주 아주 간략하게 요약했네요.
강유는 공로도 있으며 그만큼 과도 큰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인물로 위에는 사마사가 있지만 강유는 사마사는 가지고 있는 정치력이 전무했으며 한번의 과가 치명적인 소국의 입장에서 그의 행동들은 신중하지 못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대표적인게 한중방어 체계를 바꾼 것이고 이는 나중에 종회가 한중으로 들어오는 결정적인 요인이됩니다 다만 마지막 까지 촉의 충신으로 싸우다 죽은 가슴뜨거운 “낭만”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s 한중의 방어체계를 설명 안드렸는데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기존 한중방어 시스템은 여러곳에 거점을 두어 적 병력이 평지로 오는 것을 이중 삼중으로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강유는 이것으론 크게 적을 물리칠수 없다 여겨 거점을 비우고 평야로 유인 청야전술을 섞어 굶주린 적을 한번에 포위 섬멸하는 시스템으로(덩달아 불안한 본인의 정치적 입지도 세우고자) 바꾼 것입니다 결국은 대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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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는 아무래도 항장출신이라서 가질 수 있는 정치력이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었죠.
상관 복도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본인 외에 다른 옵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의가 죽고 진지와 강유가 투탑이 되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정치력을 죄다 잃은게 치명타가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말년에는 거의 지방 군벌이 된 마냥 중앙정계에는 영향도 못미치고 지방에서 칩거하면서 수비만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