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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 탐구 2편 강유

웨간지
7
  1979
Updated at 2025-02-10 07:35:58
삼국지 인물 탐구 2편 강유

안녕하세요 오늘은 강유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모바일로 적다보니 띄어쓰기 오류 , 오타가 많지만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유는 쇼윈도우의 화신 원소가 죽은 202년 천수군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백약입니다 위에 임관 했으며 옹주 지역에서는 이름이 제법 알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략과 강유전의 기록이 조금은 다른데 결국엔 위로부터 버림받아 촉으로 귀순했던 것으로 보이고 다시 돌아오라는 가족(어머니)을 쿨하게 쌩까버립니다

후한말 효렴으로 천거된 이들이 많은데 이 중요한 덕목인 효(孝) 를 버렸다는 건 자신을 버린 위나라에 대한 원망인지 한의 충신으로 남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238~9년 부터 한중에 장완과 주둔했으며 243년엔 예전 위연 자리였던 실질적 북벌 책임자인 양주자사에 임명 됩니다 이후 비의 시대에 제한적 병력으로 강족과의 연계로 농서지역을 침범합니다  이때의 공적도 적도의 공 못지 않은데  만여명이나 되는 부락들을 귀속 시켰으며 기록상 하후패 곽회와의 전투도 승리했던 걸로 보입니다(확실한 건 아닙니다) 253년 비의가 곽순에게 암살 당하고 진지 , 강유 이두정치가 시작되며 이때부터 군 전권은 강유가 담당합니다.

대병을 이끌고 주구장창 농서로의 진출이 이때부터 시작되며 255년 적도로 진출하어 왕경의 군사를 말 그대로 대파 하며 대장군으로 승진합니다 바로 1년뒤 호제와 상규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기산으로 출병 단곡에서 등애와의 전투에서 대패 하고 후장군으로 강등 됩니다 호제가 합류 못한 것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은데 호제가 딱히 처벌받지 않은점 , 군을 잘 물린 공적이 없는점 을 볼때 제 생각으론 단순 타이밍을 못 맞춘 것 같습니다(아니라는 의견 적극 환영합니다) 그뒤로도 수만을 이끌고 농서로 출병하여 민심과 중앙의 신뢰를 잃게 되고 이점은 그가 한중 방어 시스템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후 사마소가 촉을 치고 검각에서 끝 까지 저항하던 강유는 항복 후 종회와 난을 준비하다 들켜 죽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드라마틱한데 5~6명을 베며 무쌍을 찍다가 죽습니다(정사기록  연의아닙니다) 여기까지 강유의 삶을 아주 아주 간략하게 요약했네요.

 

 

강유는 공로도 있으며 그만큼 과도 큰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인물로 위에는 사마사가 있지만 강유는 사마사는 가지고 있는 정치력이 전무했으며 한번의 과가 치명적인 소국의 입장에서 그의 행동들은 신중하지 못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대표적인게 한중방어 체계를 바꾼 것이고 이는 나중에 종회가 한중으로 들어오는 결정적인 요인이됩니다 다만 마지막 까지 촉의 충신으로 싸우다 죽은 가슴뜨거운 “낭만”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s 한중의 방어체계를 설명 안드렸는데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기존 한중방어 시스템은 여러곳에 거점을 두어 적 병력이 평지로 오는 것을 이중 삼중으로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강유는 이것으론 크게 적을 물리칠수 없다 여겨 거점을 비우고 평야로 유인 청야전술을 섞어 굶주린 적을 한번에 포위 섬멸하는 시스템으로(덩달아 불안한 본인의 정치적 입지도 세우고자) 바꾼 것입니다 결국은 대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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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ROWN
2
Updated at 2025-02-10 04:40:14

강유는 아무래도 항장출신이라서 가질 수 있는 정치력이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었죠. 

상관 복도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본인 외에 다른 옵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의가 죽고 진지와 강유가 투탑이 되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정치력을 죄다 잃은게 치명타가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말년에는 거의 지방 군벌이 된 마냥 중앙정계에는 영향도 못미치고 지방에서 칩거하면서 수비만 했죠.

WR
웨간지
2025-02-10 04:42:58

내정으로 정치력은 전무했으나 군권은 쥐고있었습니다 정치를 빼고서 봐도 본인의 과가 크기도 하며 하필

대촉전선의 장수들이 너무 뛰어났네요 진태 등애 종회 곽회 ..

CROWN
1
Updated at 2025-02-10 04:47:47

인재가 모자라는 촉에서 대 위 전선을 맏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데, 이 인물이 "정치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제갈량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기회만 있으면 강유를 칭찬해줬던걸로 보이고, 그나마 사영이 있던 시기에는 이들이 강유를 엔간히 커버쳐줬기 때문인데 

비의가 죽으면서 결국 정치적으로 커버 쳐줄 사람은 없고, 가진 군권은 크고, 그런데 본인은 촉한을 배신하거나 야망이 크게 있던 것도 아니여서 255년 대패 이후에 중앙정계의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소위 "사리기" 위해서 그냥 수비만 줄창하다보니 촉한이 멸망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결국 어설픈 반란에 휘말려서 죽어버린거죠. 

WR
웨간지
2025-02-10 04:52:43

제갈첨의 발언을 봐도 강유가 중앙에서 신뢰를 잃은건 맞아보입니다 하지만 강유가 정치적으로 영민했다면 장안을 제외한 옹양주를 점거 했다고 보시니요 저는 조금 회의적인 입장이라서요!

CROWN
1
2025-02-10 04:56:51

옹양주 점령은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강유 폼이 절정일때는 정치적인 문제로 쓸 수 있는 병력이 언제나 한정되어 있었으며, 비의가 죽으면서 일시적으로 리미트가 풀렸을때 초반에는 크게 이겼지만 결국에는 패배했죠. 

전 정치력도 실력으로 보는지라 호제가 제때 합류하지 못한(안한?)점도, 그리고 그런 호제가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는것도 강유의 정치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상상이긴 하지만 촉에서 강유가 대장군이 되어서도 북벌의지를 굽히지 않아서 일부러 차려놓은 밥상을 엎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근데 이정도로 신뢰받지 못한다면 대장군을 해선 안되죠.

WR
웨간지
2025-02-10 05:02:36

아 ..호제에 관한 해석은 저도 지금 처음생각 해봤는데 일리가있네요 감사합니다 또 여쭤보고 싶은데 있는데 제갈량이 계속 좋은 인물평을 해준게 기반이 없는 강유를 장완이나 비의 다음 후계로 생각했었지가 궁금합니다 

CROWN
1
Updated at 2025-02-10 05:12:35

전 아니라고 봅니다.

오나라의 제갈씨를 보더라도 외부에서 유입된 세력이 군권을 휘두르면 어떤 견제를 받는지가 뻔히 보이는 마당에 항장출신인 강유가 군권의 전권을 휘두르는 상황은 제갈량도 예측하지 못했을거에요.

심지어 사영이 너무 빨리 죽었죠. 개인적으로 강유는 컨트롤 타워가 없으면 안되는 유형이라고 봅니다. 비슷한 항장이지만 촉 황실과 혈연관계(?)라도 있는 하후패라도 살아있었다면 파트너로 좋았을거 같지만...

WR
웨간지
2025-02-10 05:55:27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DDgk
1
Updated at 2025-02-10 04:55:56

촉을 망국으로 몰고간 장본인이라 생각합니다. 본인 보신때문에 나라의 운명을 건 도박을 걸었고 그걸 전부 날렸습니다. 등애의 또다른 도박때문에 촉이 망했다곤 하지만 등애가 없었어도 이미 강유의 도박으로 한중을 잃었습니다. 한중 없는 촉은 명분도 실리도 없으니 더이상 유지하기 힘듭니다

 

군권을 틀어쥐고 제갈량이 되고 싶었지만 그런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라 봅니다. 충신이라고 하지만 그 충이 어디로 향해있는지도 의문이구요

WR
웨간지
2025-02-10 05:06:50

군권1인자인만큼 정치력도 능력으로 들어가야 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 시각으로 볼때 DDgk 님 말씀대로 망국으로 몰고간 장본인이라는 의견도 납득이 갑니다(개인적인 생각인데 단순 군을 부리는 용병에 있어서는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혹시 다른쪽으로 항한 충은 어떤 것 인지 여쭤봐도 괜찮을가요

AIMac
1
2025-02-10 05:43:14

요즘 정사 삼국지를 다시 읽다보니  '촉나라는 사료 부족이고 뭐고 그냥 인재도 부족했고 국력도 삼국중에 제일 약했구나' 란 생각이 듭니다. 촉서 허자전에 들어간 손성이 '촉은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에 허자와 호잠같은 사람들도 기록될 수 있었다'라고 평한 부분이 나오는데 위의 항장, 높은 지위도 아니고 양주의 낮은 군관 출신(직책의 높고 낮음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투항 전에 천수 태수의 부하로 따라다닌걸 보면 그다지 중책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인 강유가 중용된게 그런 촉의 인재부족에서 기인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강유가 자기 능력과 촉의 국력을 벗어난 북벌을 계속 시도해서 국력을 깎아먹긴 했지만, 북벌을 안했다고 촉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흠.. 좀 부정적입니다. 

초주가 항복을 권하면서 한 얘기를 보면 이미 촉의 신하들은 황위를 찬탈한 위에 대항하여 중원을 수복하겠단 대의를 가지고 한의 적통을 잇는 황조의 자부심을 가지기보단 이미 익주의 지방정권으로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없으면 빨리 접는게 피차 좋다의 인식이 강했던 듯 하니 그런 정신머리로 강유가 북벌을 안하고 전력을 보존했다 한들 위나라의 공격을 이길 수 있었을까 싶네요.

그리고 오와 달리 촉은 황조 성립부터 위의 안티테제기 때문에 북벌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보이기도 합니다. 조조와 조비 욕을 바리바리하면서 황제에 올랐는데 위와 화친하거나, 위에 대한 공격을 포기한 순간 그 정권의 정통성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나라는 그냥 아 몰라 나 황제 이랬으니 그런 부분에선 참 편리하죠 ㅎㅎ

WR
웨간지
2025-02-10 05:51:40

헌제 유협이 살아있는데 선양했다고 상복까지입은 나라인데 위를 안치고서는 명분이 없죠  말씀하신대로 오나라 입장이 참 편하긴하네요   아  그리고 저역시도 강유가 무리하게 북벌을 안했다고 촉이 멸망 안 했을 거라고는 생각 안합니다 다만 한중만 그대로 놔두고 내정에 조금 힘을 더 썼더라면 더 존속 가능했으리라 생각하네요 사실 촉이 장안제외 옹양주를 점거 가능했던 시점은 1차북벌과 4차북벌 그뒤론 잘쳐줘도 단곡전투 전 상황 까지라 생각해서요

코치주짓떼로
1
2025-02-10 06:04:16

2000년대 극초반 삼국지커뮤에서 닉네임이 강유였었죠 그걸 자연스럽게 몇년 달다보니 문무겸비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무력지력을 키우려고 복싱과 바둑을 매일같이 했는데 딱 그것만 잘하고 공부는 못하는 학생이 되었네요 ㅎㅎ 

WR
웨간지
1
2025-02-10 06:07:19

바둑을 잘하시면 지력도 높으신 문무겸장이시네요 

대표적으로 여몽과 존월이 있습니다

코치주짓떼로
1
2025-02-10 06:11:06

역시 예시를 보고나니 제갈량이나 관우를 닉네임으로 했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ㅋㅋ

WR
웨간지
2025-02-10 06:13:20

관우는 제 생각에 조금 헛똑똑이 이미지가 있어서

주유와 태사자로 지으심이 나아보입니다 ㅎㅎㅎ

기탄국어
2025-02-10 07:09:08

역시 인생은 존월처럼...🤣

hwanny1723
1
Updated at 2025-02-10 06:24:26

강유의 촉 투항은 제갈량의 옹양주 공략에 내응한 보복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는 쪽도 많더라구요.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천수/안정/남안 3군이 즉시 촉에 귀부하는데 이 과정에서 강유가 개입했고, 가정의 패전으로 촉군이 물러갈때 강유도 어쩔수없이 촉에 합류한 그림일까요?

당시 천수태수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강유의 내통을 의심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3군에서 서둘러 도망치진 않았겠죠.

그리고 강유 최후의 저항도 같은 맥락에서 어차피 촉이 위에 멸망하면 본인은 처형될게 확실한 이유도 있을거 같습니다.

당시 조위의 법은 엄정해서 적에게 투항하는건 매우 중죄에 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예외로, 한 달-90일인가 가물하네요.-을 방어해도 원군이나 지원이 없다면 투항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고 본거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강유의 충절을 폄훼할 이유는 결코 없겠죠.

WR
웨간지
1
2025-02-10 06:54:07

화니님 글을 보고 다시 찾아보니 제가 말한 한의 충신이나 개인적인 보복이랑은 거리가 머네요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ㅎㅎ

hwanny1723
2025-02-10 07:00:57

그냥 여러가지 가설중 하나라고 보면 될거 같아요.

말씀하신 내용도 마찬가지구요.

Flashy Laker
1
2025-02-10 07:46:45

강유 얘기를 하면 제갈량, 나아가서 촉한사영의 짧은 명이 늘 아쉽다로 결론나는것 같습니다

 

 전 제갈량이 이릉대전 이후 몇년만에 남만정벌에 북벌까지 수행할 국력을 끌어낸점이나

 그전에도 형남4군에서 군비를 갖춰 입촉하는 유비의 지원를 가서 익주를 잡아먹을수 있게 만든점을 볼때

 

 제갈량은 마침표를 찍지못했지만 천하기재를 타고난 최고의 재상감이었다고 생각하고

 

 제갈량&장완이 천수를 누리며 나라를 살찌우고 비의,강유,하후패, 왕평 등의 인재들이 군을 이끌었다면 

 

 적어도 조위가 승리하고, 사마씨 의해 위가멸망하는 허무한 결과는 안나왔을것 같습니다

WR
웨간지
2025-02-10 08:20:03

말씀대로 흘러간다고 가정할 때 조위 입장에서 외세(촉 오)가 강성할수록 사마씨는 중앙에서 힘을 키울수가 없어서 말씀하신대로 사마씨한테 위가 쉽게 멸망할 것 같지는 않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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