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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뉴비일까?
  205
2025-02-08 22:36:23

복도 끝자락의 창문으로 뉘엿뉘엿 해가 기울 무렵, 민재는 낡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금세 잊어버렸지만,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이상하게 쓸쓸했다.

그때, 한 여자가 살풋 걸어 들어왔다. 환자복을 입었지만 어느 모델 못지않게 곧은 자세가 눈에 띄었다. 그녀가 민재에게 다가오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사람 없나요?”
민재는 의아했다. 이 공간에 자신 말고도 누가 더 있었나? 그 순간, 그녀의 웃는 얼굴만은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서 민재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으실래요? 제가... 자리 비켜드릴게요.”

짧은 대화 속에서, 둘은 서로의 이름도 성도 뚜렷이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유 모를 끌림에 서로를 바라보고, 자꾸만 웃음이 났다. 마주치는 눈빛에서 투명한 빛이 번졌다. 삐걱대는 의자 옆으로 함께 앉아 창밖의 석양을 바라보며, 그들은 아주 잠시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다음 날 아침, 민재는 자신이 왜 병원에 있는지, 무슨 병으로 입원했는지조차 흐릿했다. 머릿속이 자꾸만 덜컹거려서 기억이 넘어져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단 하나—어제 만났던 그 웃음이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 있었다. 그가 애써 복도를 돌아다니던 중, 의자에 홀로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여전히 그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시 만나네요.”
그녀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인사를 건넸다. 민재는 대답 대신 그녀 곁에 가만히 앉았다. 그날도 해는 붉었고, 두 사람의 손가락 끝이 살짝 스쳤다.


그러나 사흘 뒤, 민재가 매일같이 찾아가던 그 자리에는 그녀의 모습이 없었다. 수간호사가 가까이 다가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어제, 그녀가 숨을 거뒀어요.”
민재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녀...라니요? 제가... 아니, 누구 말씀이시죠?”
수간호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민재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분도 같은 증상이셨어요.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당신이 모르는 게 당연해요.”

민재는 그 순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였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그는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가슴속에 아릿하게 젖어드는 따스함—잠시나마 그의 세상을 밝혔던 작은 빛의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민재는 힘없이 일어서서 창문 앞에 섰다. 바람이 부는 창밖을 바라보며, 더 이상 이름조차 잊어버린 그녀를 떠올렸다. 분명 서로를 모르는 두 사람이었는데, 단 한 번의 눈빛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만큼은 둘도 없는 연인이었다.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연인.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었던 그 시간.
민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환한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찰나의 빛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먼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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