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하얀 리본
감독 - 미하엘 하네케 , 주연 - 크리스티안 프리델, 버그하트 클로브너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연속적으로 기이하고 잔인한 사건이 벌어진다. 의사가 누가 걸어 놓은 줄에 넘어져 낙마하고 마을 남작의 아들이 엉덩이에 멍이 든 채로 건물에 매달려 발견된다. 그리고 칼리의 눈까지 도려내는 엽기적인 사건 등이 일어났고 마을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 마을에 선생이었던 자가 사건들을 설명해 준다.
영화 마지막에서는 범인을 알게 된다.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같은 흑백영화이며 똑같이 영화 내에서 OST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장르는 완전히 다르다. 하얀 리본은 기분 나쁘고 음침한 동굴 같은 영화라면 로마는 차갑고 고요한 파도 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와 로마를 비교한 이유는 로마는 책임감 없는 아버지들에게서 용감하게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용기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라면 하얀 리본은 책임감만 가득한 강압적인 아버지들의 권력에 대한 아이들의 반항에 대한 영화이다. 그래서 "로마의 어둡고 암울한 버전이 하얀 리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서는 두 명의 아버지가 나오는데
목사, 의사, 소작농이다. 목사는 집 밖에서는 목소리를 내며 마을에서 인정받는 남자지만 집 안에서는 강압적이고 매정한 인간이다.
아이들이 늦게 오자 밥을 굶기며, 한창 성에 대해 궁금할 나이인 마르틴이 수음을 하자 올바른 성인식을 알려주는 대신 그의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침대에 손을 묶는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순결이라는 뜻을 가진 '하얀 리본'을 매달았다.
의사는 아내와 고별하고 산파와 관계를 이었지만, 그녀의 늙고 추한 얼굴이 더럽다며 매몰차게 악담을 퍼부으며 내쫓는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딸 안나에게까지 손을 댄다.
영화에 끝에서는 앞서 말한 엽기적인 사건들의 범인을 유추할 수 있게 되는데, 마을의 선생이 진실을 알게 되고 목사의 집으로 찾아간다. 생각해 보면 영화 내에서 항상 사건에 현장에 마을의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폭력성이 나타나는데 목사의 장녀 클라라는 아버지가 키우는 새 픽시를 죽이고, 관리인의 아이들은 지기의 피리를 빼앗기 위해 그를 물에 빠뜨리는 등 그들의 심리적 상태가 위험한 상태임을 영화는 알려준다.
선생은 아이들을 추궁하지만 극구 부인하고 결국 목사에게 본인이 생각한 사실을 알리지만 목사는 그를 협박하며 이 이야기가 남의 귀에 들어갔을 시 당신을 감옥에 집어넣겠다 협박을 한다. 누구보다 도덕적이며 진실과 순결을 강조했던 목사가, 심증뿐이지만 선생의 생각에 어떠한 조치가 아닌 협박을 가했다.
그리고 영화는 교회 2층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과 1층에서 이를 듣는 어른들을 보여주며 끝난다. 결국 선생은 이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았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 영화는 범인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관객은 범인이 아이들이었음을 알 것이다. 아이들이 범인이란 사실에 초점을 두어, '왜 아이들이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주 간단하다.
영화 내에서 어른들에게 억압과 폭력을 받던 아이들. 그리고 그 감정은 엽기적인 행태까지 이어진다. 갈 곳을 찾지 못한 그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타인에게 향했으며 시간이 갈수록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이들의 행위를 깨달은 이들의 모습. 목사는 사건을 덮고 선생을 협박했으며 관리인은 아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지기의 아버지 남작은 지기보다는 아내의 불륜 사실에 분노하기 바빴다.
걷잡을 수 없는 사건들과 점점 대담해지고 잔인해지는 아이들. 그리고 묵인하고 폭력적인 어른들.
마지막 장면, 어른들과 아이들을 나눠놓은 장면은 소름 돋기 그지없었다, "저 장면에서 1층에 있는 어른들이 어렸을 때는 2층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그들도 받아온 폭력이 대를 이어 저 순수한 아이들을 타락시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영화 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막내아들이 목사에게 자신의 새를 주는 모습이었다.
두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소유욕이 강한 어린아이들이 본인이 키우던 새를 주는 것이 매우 이상해 보였다. 이것 또한 목사의 억압이 가져다준 하나의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혹은 이 영화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순결함인 아이가 단지 키우던 새가 죽어 속상해할 아버지를 위해 본인의 새를 주며 위로해 주는 사랑스러운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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