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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vs 정도전

루카 돈치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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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4
Updated at 2019-02-22 02:13:59

저는 결국은 정몽주가 옳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를 포기 하지 않았죠.

고려를 고쳐쓰는것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것보다 빠른길이라고 생각했고,

조선을 건국해 새로운 세상을 열는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정도전과 대립합니다.

 

근데 제 생각이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정몽주가 옳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정학적인 여건상 외세의 침략을 자주 당할수 밖에 없기도 하지만

조선이 침략을 당한 이후로 조선의 유교사상은 매번 예송논쟁같은 쓰잘때기없는 

'자기 신분은 양반이다'라는 것만 강조하고 허례의식만 키웠습니다.

결국 이는 나라의 경쟁력을 잃게하여 일본 열강에 오랫동안 지배당하는 단초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중국인들이 문화 혁명이후로 예의없고 몰상식 한거 보면 그나마 유교사상이 남아있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긴 하지만, 고려가 제대로 된 나라로 고쳐져서 쭉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그러면 초기 실학파들처럼 좀 실용적인 학문이 발달했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또, 조선보다는 고려가 상당히 Generous한 사회였다고 알고있는데 그러면 불교를 중심으로 한

좀더 허례 의식이 없는 나라가 될수도 있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상상도 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WQAmfkxp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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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분에백발 포르티스
7
Updated at 2019-02-22 02:08:07

 그런데 정도전이 바라던 유교사회와 조선중기이후의 유교는 너무나 변질이 된거라서요. 정도전은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지만 조선중기때 유학자들은 말그대로 고인물들이라.. 고려말기 그러니까 원나라간섭기이후 고려는 망해가는 나라답게 정치하는 분들이 백성들을 피를 빨아먹고 수탈하는 악질들이었습니다. 조선말기 그들과 다르게 없죠.

r.fri
2019-02-22 02:12:18

 역시 if 놀이가 제일 재밌네요. 저는 정도전같은 인물의 연속이 일어나서 조선도 중기 이후에 한번 교체되는 걸 바랬습니다. 물론 이것도 백성들한테는 많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사건이 되었을 것이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 시스템의 교체시기를 점치기에는 외세에 대한 막연한 우려가 너무 컸는데다가 기틀이 '전통'위에 있었다는 게 문제였겠네요.

WR
루카 돈치치_
2019-02-22 02:23:34

그렇죠..전통과 명분..

사실 위정자들이라면 외세가 침략하고 국운이 흔들리면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실용적인 학문을 널리 

퍼트리고, 개방 정책을 썼어야 하는데..

 

자기 자리 지키려고 자기가 어느가문의 몇 대손인지 강조하는 학문과 정통성만 강조 하다가,

결국 일본에게 치욕적인 통치를 몇 십년이나 당하게 되죠.. 그런데 정도전 같은 인물은 몇 백년에 한번 

날까말까한 설계자이자 타짜라서 그가 조선 중기에 딱 나타나길 바라는건 너무 욕심인것도 같기도 하구요..정몽주 vs 정도전

1분에백발 포르티스
2019-02-22 02:33:18

조광조같은 인물이 나오긴했죠. 어쩌면 더 급진적인 인물일수도 있는데, 왕이 부담스러워하니 내버려지는거구요. 허균같은 경우엔 그 시대의 기조를 완전 파괴하는 홍길동전을 저술했습니다.

 

밑에 성민준님 말씀처럼 학문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념에서 조선이 흔들거린것이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불교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타락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신라의 몰락이죠. 지배세력의 타락은 결국 저항에 부딪치게 마련이죠.

[LAL,IND,GSW]Heroes
Updated at 2019-02-22 02:58:32

왜란 및 호란 후 김육이 대동법 시행할 때 일으킨 파장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실용정책면에서는 대동법도 그중 하나고, 영조도 균역법 시행했고 하다못해 숙종 이래로 실학파들이 계속 나와요. 개방 정책은 그 흥선대원군이 쇄국 정책 시행하기 이전까지 그러니까 집권 후 1850년대 후반-1860년대 초반까지 특히 프랑스하고 나름대로는 엄청 거래하려고 합니다. 무기 등에서요. 정작 프랑스는 거래에 제대로 응한 적 없었고 오페르트 도굴이 터지면서 완전히 쇄국의 길로 갑니다.

성민준
1
2019-02-22 02:58:29

자꾸 핀트를 잘못잡으시는데 성리학/유학은 본디 공자때부터 유연한 학문에 가까웠지 정통성을 주장하고 이단논파가 주된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정치적 투쟁과 맞붙으면서 정치논리를 학문논리에 이입해서 여기서 밀리면 이단 낙인&정쟁 패배로 죽음에 이르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러서 변질된 것에 가깝습니다.

 

계속 유학/성리학=양반/어느가문 몇대손 강조하는 학문 이라는 틀에서 생각을 하시니까 계속 이런 의견만 나오는 것 같네요. 다른 분들 댓글도 좀 읽고 받아들이셨으면 좋겟습니다. 

r.fri
2019-02-22 04:21:51
음... 저는 사실 글쓴 분이 본문에서나 여기서나 '조선의' 유교를 언급하셔서 조선의 주류 유학자들, 그러니까 정치활동을 하던 유학자들의 유학이 기원전의 그 유학이랑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댓글의 다른 분들이 얘기들하시는 것처럼요.

사실 유학의 변질에 대해 꼬집으면서 이 유학이 공자의 그 유학과는 다르다. 라고 얘기하는 것도 if 놀이의 한 축에 있기 때문에 그 '논의의 부질없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한 반응이 이리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역사에 대해 논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역사가 500년 동안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은 한 번도 펴본 적이 없어서, 모던과 포스트모던, 훨씬 이전의 애국주의가 불과 몇십년 전까지 혼재하고 있던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책임은 그 쪽에 있지 여기서 저희끼리 잘잘못가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성민준
2
2019-02-22 02:20:55

전혀 그렇게 생각안하는데요.

너무 결과론적인 얘기에요.

유교/유학이 그렇게 경직되고 고인물의 학문이 되어버린건 학문적 한계가 아니라 목숨을 건 당파싸움, 즉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지 그 학문 자체가 잘못되었던건 아니죠. 고려의 애매한 중앙집권체제로 인한 지방의 문란 등은 조선 개국 이후 진행된 중앙집권화로 체제가 공고해지며 행정구역의 체계가 잡히고 국가 기틀이 탄탄해지는 결과로 이어졌죠.

 

성리학/유학을 '나는 양반이다'라며 허례허식만 내세운 학문이라고 이해해서는 논의가 이어질 수가 없고 이 시대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때 역성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어차피 고려는 수명이 다한 나라였습니다.

정몽주같은 충신 한 둘로 어찌 될 게 아니었어요. 

liberalarts
2019-02-22 02:31:09

정도전같은 스탠스의 인물을 싹 몰아내고 자리잡은게 소위 허례허식 중심의 유교 아닌가요? 초기 조선 유교시스템은 왕권신권 상호견제를 기반으로한 중앙집권식 관료제 도입이 핵심이죠. 거기에 반발한 지방세력이 밥그릇챙길려고 변질시켜간게 소위 지금 말하는 허례허식중심의 유교이구요. 가족중심 지역깡패, 부자들이 가문의 명예니 강조하면서 나라망치는건 전세계 공통현상인데 우리는 그게 유교로 나타난것일뿐 유교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LAL,IND,GSW]Heroes
2
Updated at 2019-02-22 02:59:35

시계열로만 접근해보아도 조선 개국 후 유학의 교조화까지 250년, 조광조를 기준으로 삼아도 150년. 유학의 교조화 이후 제국주의 침탈까지 또 약 200년. 글쎄요 조선의 개국이 유학을 강조했으니 일제에 침탈당했다라기엔 시간적 간격이 너무 넓죠. 게다가 이미 고려는 원의 지배 이후 사실상 번국이라서요. 공민왕의 개혁 등은 차치해더라도 소위 말하는 신진사대부도 정몽주-조준 등 어느 정도 권문세족화된 개인 토지가 충분한 선비들이 기득권으로 있던 반면, 정도전은 없는 세력을 대변하고 있었죠. 이 중 조준은 정도전의 토지개혁안에 찬성했던거고, 사실 정몽주 역시 이 때부터 궤를 달리하게 됩니다. 예송논쟁이 항상 대표케이스로 '조선은 막장국가다!'의 논거로 나오는데, 일단 예송논쟁은 조선 정치체에서 '왕은 다르다'vs'왕이나 양반이나 같다'의 정치적의미도 있고요. 그시기에 그짓거리만 한 것도 아니에요. 광해군이 꺼려했던 대동법도 효종-현종 때 계속 확대해서 시행됐고요. 경신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예송논쟁만 하고 있었다는건 진짜 잘 못 알려져있는 사실이고요. 되려 조선 정부도 뭔가 해보려했는데 모두 실패했죠. 이미 당시 고려의 불교는 정도전이 '불씨잡변'으로 대차게 디스했을만큼 부패했기도 했습니다. 당장 태종-세종-문종까지의 조선도 굉장히 실용적이었죠. 측우기, 화차, 뭐 다 이 시기에 나온걸요. 너무 효율성만 따진게 아니라 싶을 정도로요.

진저
4
2019-02-22 02:51:59

예송논쟁 이야기면 사림이 통치하던 시절인데 그거 뿌리가 정몽주같은 온건개혁파예요. 정도전이든 정몽주든 어느 쪽을 선호하시건 상관없는데, 이건 그 전에 앞뒤가 안맞는 말씀을 하고 계시네요

[MEM]모란트
2019-02-22 03:04:12

저도 정몽주쪽입니다 

 

고려말기 권문세가들을 주축으로 막장이었다고 그러지만 

 

신진사대부들에 의해서 권문세족들에 의한 부패도 개선되고 힘도 약해지고 개혁이 되었죠  

 

고려라는 나라안에서 정도전이 이야기한 변화,개혁이 아예 안되는것도 아니었었는데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고려는 국방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나라였고 황제라는 존칭을 붙이며 자주적이고 개방적인 국가였었죠 

물론 말기에는 간섭을 받았지만 

기본 틀은 조선의 사대부, 유교에 조선은 고려보다 덜 개방적이었었죠 

 

우리나라가 영어로 코리아(KOREA)라는것도 역대 우리민족 역사에서 고려가 가장 개방적이었고 외국인들 왕래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었고 고려에서 따온것이죠 


이성계가 욕심이 너무 많았다는 중국사서에도 나오고 

어찌보면 조선 건국이 본인 욕심에 의한 명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고려라는 나라 유지를 하면서 고려의 장점은 가지고있되 좋지 않은것을 변화시켜나가는게 더 좋지 않았나라고 봅니다 

1분에백발 포르티스
Updated at 2019-02-22 03:11:04

정치적인 상황에서 놓고 보자면 정도전은 뺐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뺐지 않고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즉 그 시대에 살 수 없는 사람인거고, 정몽주는 다릅니다. 정몽주는 기득권에 더 근접한 사람입니다. 저 시대의 사대부들은 권문세족출신들이 많았고 결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새로운 왕조는 정몽주에겐 불필요하고 불편한 것이죠.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그들은 정치를 한거고 정도전이 이긴겁니다. 하지만 정도전도 최후의 승자가 못됐죠. 왕이 되려는 자와 반대세력이 되었으니까요. 정도전의 재평가는 근대사회이후입니다. 저 시대에서 왕의 적대세력을 높게 평가할 리가 없죠.  

에볼루션
2019-02-22 03:11:30

정도전은 당시 세계사적으로봐도 획기적인 정치시스템을 구축하려했습니다 재상중심의 관료들의 정치. 조금 발전해보면 입헌군주제를 실현하려고 했죠 명군이나 암군이냐에 따라 갈라지는 정치보다 능력있는 재상들이 이끄는 정치를 실현 하려고 했는데 나 킹왕짱이 왜 권력이 작아 아쩌씨!!!하는 강력한 왕권주의의 이방원과 정면충돌 애초 삼봉선생대로의 바램대로 조선이 이어졌으면. 정말 if지만 조선이 그지경이 되진 않았겠죠.

[POR]No7.Roy
2019-02-22 03:31:26

뒤에서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우리로서는 결과를 놓고 보기에 여러 의견이 나올수있지만 개인적으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건 결국 어쩔수없는 필연적 무언가가 작용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개인의 권력욕이든 민중의 지지든 지배층의 부패든 지식층의 필요성이든 뭐든 말이죠. 조선이 세워질만하지 않았으면 세워지지 않았을거라 봅니다. 당시 시대의 요구사항이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건국을 바랬기에 결국 그대로 이어지고 500년을 이어간게 아닐까 싶습니다.

백수광부
1
2019-02-22 03:44:28

유학으로 대표되는 조선 중후기 세력 넓히고 권력을 잡았던 유림인들은 오히려 정몽주의 후계 아닌가요?

태연
2019-02-22 03:54:22

이방원과 수양대군이 유능한 인물들 다 죽여서, 3족을 멸해서 조선 중기이후 역사가 우울한거 아닐까요;;

1분에백발 포르티스
2019-02-22 04:05:06

이방원같은 경우는 고인물이 될꺼 같은 세력들을 다 죽여놓은게 이어받은 세종입장에선 위대한 성군이 될 계기가 되었었을 수도 있구요.  답이 없어 보이는 조선중기에도 이이,이황같은 생활속에 밀접한 인물들이 나왔고,(정작 그분들이 무엇을 했는지 우린 모르는게 아이러니) 이순신같은 영웅도 나왔죠. 뛰어난 사람들은 늘 있어왔지만 노회한 정치꾼들의 권력욕심이 암울하게 만들었죠. 그러다 숙종같은 카리스마있는 왕이 나오면 깨갱거리는거구요. 그러건말건 민초들은 제살길을 알아서 마련해나갔으니 나라가 지탱이 된거죠.  

레찬™
2019-02-22 04:04:49

오히려 정도전보다는 세조가 더 조선에 나쁜 영향을 끼쳤죠.

EveryDame
1
Updated at 2019-02-22 04:25:45

일단 정몽주와 정도전 모두 유학을 베이스로 성장한 신진사대부입니다. 그리고 정도전이 훈구파의 대표 인물이고, 정몽주가 이후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림파의 뿌리격 인물입니다. 조선 중기 사화 등을 거치며 실권을 잡은 건 사림세력이고 이후 조선이 양란 등의 변곡점을 지나면서 학문적 성격에서 사회 문화적 제도와 정치색으로 변질된 거라 생각하고요. 말씀하시는 유학의 폐단은 정몽주 정도전 세대와는 연관성이 상당히 약하고, 굳이 따져보면 그 폐단을 일으킨 사림의 뿌리조차 정몽주에요. 고려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토지제의 폐단이 개선될 여지가 없었을 거라 봐요.

[PHI]아론램지
2019-02-22 04:27:15

영남칩거 100년 동안 갈고 닦고 올라와 정치기반을 닦은 사림들이 정몽주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고 예송논쟁은 정치세력간의 권력다툼이라고 볼 수 는 있지만 단순히 양반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위한 논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법을 중심으로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을 다툼이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daydreamer
2019-02-22 05:30:16

고려 말 지배층은 이미 썩을 대로 썩어있어서 조선 중기 이후의 흔히 말하는 유교꼰대들과 나라에 해가 되는 정도에서 그놈이 그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건국세력이 이념으로 삼았던 초기의 성리학이 특별히 문제가 있진 않았죠. 어느 종교나 권력을 잡고 오래 되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 그것보다 왕씨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기 때문에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좋게 볼 수가 없네요. 이성계도 마찬가지구요.

♨퍼라.
2019-02-22 10:19:24

맥을 아예 잘못 짚고 계신듯 합니다

중고세탁기 ™
2019-02-22 12:18:32

  소위이야기하는 조선성리학 망국론인데요.. 정몽주도 성리학자입니다.

 

 조선은 문제가 있는 나라였다. 그런데 정몽주는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으니 정몽주가 옳았다라는 식의 논리전개인데 맥을 완전히 잘못 잡으셨습니다. 

중고세탁기 ™
Updated at 2019-02-22 12:22:04

  조선성리학의 핵심은 명분과 의리입니다. 좋은 단어들이죠. 하지만 이 좋은 단어들에 너무 극단적으로 몰입한 결과 뭔가 좀 안좋았던 것이 사실이구요. 말씀처럼 명분과 의리따지다 실리를 많이 놓친게 사실이죠. 그런데 정몽주가 조선건국을 반대한 이유가 뭐죠? 바로 명분과 의리입니다. 왕씨를 내쫓을 명분이 없고 또 사대부는 왕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이때문에 명분과 의리에 목숨을 거는 조선 사대부들은 다들 정몽주의 후예를 자처하고 정도전은 역적취급했습니다. 사실상 조선을 건국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Hinrich
2019-02-22 20:50:13

 여러분들의 댓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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