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이야기 - 닙 제조사 JOWO 와 BOCK
안녕하세요.
이번 글 부터는 세계의 주요 만년필 및 관련 용품 제조사 리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다룰 것은 명품도 아니고 유명한 곳도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곳들 중 하나인, 만년필 자체가 아닌 닙만을 제조하는 독일의 두 닙 제조사 JOWO (요보) 와 BOCK (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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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만년필 제조사와 닙 제조사
전세계의 수많은 만년필 제조사들 중에, 자신들의 만년필에 들어가는 닙을 직접 만드는 회사는 (흔히 알려진 바로는) 딱 11개입니다. 앙코라, 오로라, 크로스, 라미, 몽블랑, 파커, 펠리칸, 파이로트, 플래티넘, 로밀로, 세일러, 워터맨. 이들을 제외한 모든 만년필 제조사들은 닙을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그리고 그 회사들의 만년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요보와 복 중 한 회사의 닙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널리 쓰임에도 만년필을 좀 써보신 분들 중에서도 두 회사의 이름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보통 이 두 회사가 OEM 방식으로 닙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복의 닙을 쓰는 대표적인 브랜드들만 해도 카렌다쉬, 콘웨이 스튜어트, 델타, 그라폰 파버카스텔, 몬테그라파, 오마스, 비스콘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이 회사들은 가격대가 아주 높은, 소위 명품 만년필들을 만드는 회사들이구요.
만년필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닙을, 명품임을 자처하면서도 직접 만들지 않는 회사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아주 세밀한 공정이 요구되는 닙의 제조를 전문 회사에 맡기고, 펜 제조사는 펜의 다른 부분에 집중하여 비용대비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재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펜 제조사들이나 커스텀 펜 장인들은 본인들의 펜에 요보나 복의 닙을 사용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이 두 회사의 닙들은 품질이 좋고 믿을만 하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도 의외의 장점이 있는데요. 같은 회사의 닙을 사용한 두 펜의 경우 일반적으로 닙을 서로 바꿔끼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요보에서 만든 닙을 사용하는 진하오 X450 만년필과 트위스비 vac700R 만년필은 서로 닙을 바꿔끼울 수 있습니다. 이런 호환성은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닙만을 따로 팔지 않는 제조사의 펜을 사용하다가 펜은 유지한채 닙만을 교체하고 싶다면, 호환가능한 닙을 사용하면서 닙을 따로 판매하는 제조사의 닙만을 구매하여 갈아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닙의 가격은 많아봐야 펜 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아주 좋은 옵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요보 닙을 사용하는 펜 제조사/브랜드와 모델
요보는 위와 같은 라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유명한 커스텀 펜 메이커인 Shawn Newton 의 홈페이지에서 참고했기에 닙에 Newton pen 특유의 문양이 각인되어 있지만, 생짜 요보님의 경우 저 로고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5, #6, #8 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닙의 사이즈인데요. 닙과 딱 붙게 만들어지는 피드의 반지름이 각각 5mm, 6mm, 8mm 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6 이 표준적인 사이즈, #5가 작은 사이즈, #8이 큰 사이즈이며 제가 알기로 요보의 #8 사이즈 닙을 사용하는 메이져 제조사의 펜은 없습니다. 몽블랑 마이스터스틱 149를 보신 적이 있으시다면, 그 149 의 닙 사이즈를 생각하시면 요보 #8과 얼추 비슷합니다.
요보 닙은 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제조사들만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제가 많이 소개드렸던 Loom 을 만드는 파버 카스텔입니다. 진하오 X450 도 요보에서 직접 닙을 공급받는지는 불확실하나 적어도 호환가능한 사이즈의 닙을 가지고 있구요. 이 점을 이용하면, 진하오 X450 을 아주 싼 가격에 구매하신 후 호환되는 요보 #6 사이즈의 닙을 따로 구매하셔서 아주 가성비 좋은 나만의 펜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커스터마이징에 있어 가장 추천하는 조합은 진하오 X450 + Edison Pen Company 의 18k 닙 입니다.
2. 복 닙을 사용하는 제조사/브랜드들
보시다시피, 복은 요보에 비해 닙 사이즈와 재료 면에서 더 다양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작은 060 사이즈를 제외하면 사이즈는 요보와 비슷한데요. 복의 180 사이즈가 요보의 #5, 250 사이즈가 요보의 #6, 380 사이즈가 요보의 #8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보시다시피 닙 자체의 사이즈는 비슷하나 닙이 장착되어 있는 하우징의 쓰레드가 요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고, 피드 사이즈도 미묘하나마 다른만큼 요보와 복의 닙들은 서로 호환이 되지는 않습니다.
글의 초반부에 나열하였듯, 복의 닙은 아주아주 많은 제조사들이 고가/저가 라인업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당 펜 제조사가 티타늄이나 팔라듐으로 된 닙을 장착한 펜을 판매하는 경우, 그 제조사는 복의 닙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요보 뿐 아니라 닙을 자체제작하는 11개 제조사 모두 티타늄과 팔라듐으로 된 닙은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조사에 따라서는 모델/브랜드에 따라 요보와 복의 닙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파버카스텔은 요보의 닙을 사용하지만 같은 제조사의 고가브랜드인 그라 폰 파버카스텔은 복의 닙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회사들이 요보와 복의 닙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해당 펜의 닙 품질을 보증해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복 닙을 사용하는 비스콘티와 오마스의 경우, 그 닙 품질 차이가 매우 큰데요. 비스콘티는 닙의 품질이 들쭉날쭉 하기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망해서 없어진) 오마스는 그 품질이 아주 좋기로 유명합니다. 이는 닙 제조사에서 펜 제조사에 닙을 공급할 때에 완벽한 검수를 거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펜 제조사들은 자체적으로 닙을 검수하고 세밀한 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 능력 차이가 같은 닙을 사용하는 제조사들 사이에서도 닙 품질의 차이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만년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조사 중 하나인 독일의 몽블랑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그렇듯 본 글과 상관이 없더라도 만년필과 관련된 것이면 펜 추천 요청 포함 어떠한 질문이나 코멘트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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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알고 있던 지식을 전문적으로 배운 느낌입니다. 좋은 감사합니다.